‘자주파’ 임동원, 박정희 특명에 이스라엘 탐문했다
‘자주파’ 임동원, 박정희 특명에 이스라엘 탐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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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박정희 대통령은 육군본부에 이스라엘 군을 시찰하라는 특명을 내린다. 당시 임동원 중령을 포함 14명의 영관급 장교는 이준열 장군(준장)을 단장과 이스라엘에 파견돼 특별 교육을 받고 주요 군 부대를 견학해 420쪽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육사 교수부 출신인 임동원 당시 중령이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직접 브리핑을 했다고 한다. /그래픽=노석조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얼마 전 기자와 통화에서 “자주파 6인회라는 모임이 있다. 좌장(座長)은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 원장”이라고 했습니다.
들어보니, 6인회 멤버는 박 의원을 포함해 서훈 전 국정원장,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문정인 전 외교안보특보, 그리고 이재명 정부의 국정원장 후보자인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대북 정책에 참여했던 인사들인데, 이들은 두 달에 한 번 오찬을 하며 서너 시간씩 대북 정책이나천안 새마을금고
외교 안보 이슈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고 합니다.
수년 전 임 전 원장의 2008년 출간 저서 ‘피스 메이커’를 읽었습니다. 검색해보니 미처 못 읽은 책이 있었습니다. 2022년 그의 자서전 ‘다시, 평화’입니다.
그는 1933년 평안북도 출생으로 6·25 전쟁 때 월남해 육군사관학교 13기로 입학해 서울대 위탁 교육 과정 등을 거쳐 육사 교수부에서 반공 교재를 편찬하고 생도를 가르쳤습니다. 그가 어떤 과정을11초대출
거쳐 ‘자주파’의 좌장이 됐는지 궁금했습니다.
임 전 원장의 자서전을 읽고 그 궁금증을 푸는 글을 쓰려 했습니다. 그러던 지난 13일 이스라엘이 이란의 나탄즈 핵 시설을 정밀 타격하는 대형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모사드는 이스라엘 드론이 이란의 트럭을 원하는 부분에 정확하게 공격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모사드
신용불량자 조회
마침 한반도가 주 배경인 그의 자서전에 뜻밖에도 이스라엘 이야기가 두툼하게 있어 흥미로웠는데요. 시의성을 고려해 우선적으로 그 부분을 쏙 뽑아 소개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의 뉴스레터 외설을 읽고 계십니다.
◇박정희 특명 “이스라엘 군을 보고 오라”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1970년 이스라엘 군 견학 중여성일수
낙하 훈련을 마치고 기념 촬영하는 모습. /임동원 자서전 '다시, 평화'
임동원 중령은 육사 교수부에 있다가 1969년 육군특수전사령부 직속 특수전교육대로 발령났습니다. 이듬해 2월 그는 갑자기 이스라엘에 가서 자주국방제도를 연구해 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육군본부 정책기획참모부장인 장우주 소장에게 특명을 내렸고, 이에 장 소장이 임동원을 포함한 연구시찰단을 꾸렸던 대학생자동차유지비
것입니다.
임동원은 1967년 이스라엘의 대아랍 ‘6일 전쟁’을 계기로 이스라엘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임동원은 책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작은 나라인 이스라엘이 1967년 6월 인구가 40배나 되는 아랍 연맹 14국과 적대해 자기 영토의 3.5배나 되는 지역을 점령하며 대승을 거둔 6일 전쟁에 큰 감명을 받고, 이스라엘의 국방 태세를 연구해 자주국방체제 확립에 참고하고자 했다. 6일 전쟁에서 양측의 피해 비율은 전쟁 역사상 보기 드문 기록을 남겨 온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스라엘군은 아랍 연맹군에 비해 인명 피해는 1/17(3300:5만6500명), 항공기 피해는 1/21(21:451기), 전차 피해는 1/11(86:990대)이라는 놀라운 비율로 압승을 거뒀다. 박 대통령은 어떻게 이런 승리가 가능했고, 이런 승리를 가능케 한 이스라엘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알고 싶어 했다.”
이스라엘 국방제도 시찰단은 이종열 준장을 단장으로 임동원 중령을 포함한 영관급 장교 14명으로 구성됐습니다. 이들은 서울에서 2개월간 사전 연구 조사를 하고 공군 수송기로 먼저 사이공(현 호치민)을 방문해 주월사령부 한국군 부대를 시찰한 뒤 1970년 4월 이스라엘에 도착했습니다. 이스라엘군 지휘참모대학 특설 과정에 적을 두고 이스라엘 군사제도와 전략 개념 등에 관한 특별 강의를 듣고 군사 시설과 전적지를 시찰했다고 합니다.
◇작은 영토·열강 포위...한국과 닮은 이스라엘
이스라엘군은 ‘시모네 메타임’ ‘탈피오트’ 같은 엘리트 부대를 통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대한 학생들을 최정예 요원으로 길러내고 있다. 군대에서 수년간 창의력과 유연성, 문제 해결력을 키운 이들은 실전에서 신속하게 문제점을 파악하고 최선의 해결 방안을 찾아낸다. 또 제대 후에도 끊임없이 신기술을 개발하며 이스라엘 벤처 산업을 이끈다. 군대가 ‘창업 인큐베이터’ 역할까지 하는 셈이다. 사진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전투 훈련을 하는 모습. /이스라엘방위군(IDF) 홈페이지
그 결과 임동원은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협소한 국토, 강대한 적에 포위된 지정학적 여건 등으로 특유의 군사전략 개념과 국방 체제를 발전시켰다. 적의 공격을 받기 전에 먼저 ‘선제 공격’을 통해 국토의 안전을 보장하는 ‘공세적 방어전략’ 개념이 가장 대표적이다. 협소한 국토 안에서 전쟁을 치르면 치명적인 타격을 피할 수 없기에 이는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속전속결을 특징으로 하는 ‘전격전 전략’도 중요한 전략 개념이다. 장기전은 경제적으로 감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외세 개입을 초래해 강대국의 간섭에 희생될 우려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모든 분야에서 ‘경제성과 효율성, 양보다 질 우위, 형식보다 실질 위주’의 정책을 강조한다. 군대는 최소의 상비군과 최대의 예비군 위주로 편성·유지하고, 기술 우위의 효율적인 무기와 장비를 갖추어 정신력으로 적의 막대한 물량전에 대처한다는 것이다.
전투기의 수적·상대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조종사 수를 전투기 수의 4배로 유지하고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6일 전쟁 때 이스라엘군 젊은 조종사들은 착륙해 연료와 탄약을 재보급받고 다시 출격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7~9분으로 엄청나게 단축했다는 것이다. 반면 아랍 연맹군 측은 통상 2시간 정도 소요됐다고 한다. 즉 이스라엘군 전투기는 하루에 7~8회 출격해 아랍 연맹군 측 항공기의 양적 우세를 질로 커버했다는 것이다.”
◇힘의 원천 ‘정신력’ ‘솔선수범’ ‘양보다 질’
그래픽=양인성
시찰단은 이스라엘 힘의 원천이자 한국이 배워야 할 것으로 3가지를 꼽았다고 합니다.
①정신력
이스라엘 힘의 원천은 무엇보다 국방은 곧 생존 투쟁이요, 나와 내 가족이 생존하려면 내가 싸워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고도의 정신력에 있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이런 정신력은 쓰라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반복적인 사회 교육의 소산인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 ‘두려울 것이 없으며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는 종교적 신앙심에서 생성된 것으로 판단됐다고 합니다.
②솔선수범
지도자들의 솔선수범이 이스라엘을 움직이는 힘이 되고 있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것 중 하나는 “돌격 앞으로”라는 구령이 없고, “나를 따르라”며 앞장서는 지휘관들의 솔선수범이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6일 전쟁에서도 전사자 중 25%가 장교였다는 통계가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합니다. 이례적인 전사자 비율입니다. 통상 병사 전사자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전사자 넷 중 하나가 장교였습니다.
③양보다 질 위주 원칙
이스라엘군은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자주국방 체제를 구축했다고 시찰단은 봤습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율을 발휘하도록 군 제도를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예비군의 편성·훈련·동원 제도, 육해공군이 통합 운용되는 총참모부 제도, 정보 병과와 정보 기구의 통합 운영 제도, 교육 훈련 제도, 무기 체계의 연구개발과 방위산업 육성 제도 등.
◇박정희, 1시간 보고받고 1시간 질문
시찰단은 420쪽에 이르는 ‘이스라엘 군사제도 시찰결과보고서’를 발간해 배포했다고 합니다. 임동원은 브리핑 총괄 보고 담당을 맡았는데, 청와대에 직접 올라가 박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특전’도 누렸다고 합니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 약 한 시간 동안 슬라이드 사진을 이용해 보고를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를 진지하게 시청하고 큰 감명을 받았다며 이스라엘을 본받아야 한다고 역설했다고 합니다. 나머지 한 시간 동안은 박 대통령이 온갖 질문을 하고 자신이 답했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국무총리 이하 전 장관들에게도 설명하고 군의 전 장교들에게도 교육해 ‘이스라엘 본받기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좋겠다고 지시했다. 이때가 박 대통령과 처음으로 만난 자리이자 직접 보고드린 유일한 기회였다. 나는 그의 진지한 태도와 자주국방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 큰 감명을 받았다. (중략) 나는 그해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여받았다.”
◇적국 이라크·시리아·이란 핵 모두 파괴
이스라엘은 13일 공격으로 이란의 나탄즈 핵 시설을 파괴하고 핵 과학자 및 군 수뇌부 요인을 암살했다고 합니다. 이란은 미국과 핵 협상을 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이 급습할 줄 모르고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이란은 대규모 보복 반격에 나섰습니다. 이스라엘은 애초 이를 감수하고 ‘선제 공격’에 나섰을 것입니다. 임동원 장관의 55년 전 분석과 지금 이스라엘의 군사 전략이 다를 게 없습니다.
너무나 작은 영토의 이스라엘은 적국으로부터 먼저 공격을 받거나 힘의 우위를 잃으면 순식간에 패망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수십 년 전 미국의 반대에도 끝내 핵 개발을 달성해 ‘핵’을 확보하며 군사적 비대칭 우위를 확보한 결정적 이유입니다. 주변 적국은 핵이 없습니다.
과거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비롯해 이란 이슬람 혁명 정권과 시리아 아사드 정권 등도 끈질기게 핵을 얻고자 했고, 실제로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핵시설을 짓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실력과 능력,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만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1981년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의 핵 무장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오시라크 핵 시설을 폭격했습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으로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은 2007년 시리아 알 키바 핵 시설을 일명 과수원 작전으로 전투기 공습으로 폭파해 아사드 정권의 핵 무장을 수포로 돌렸습니다. 이 핵 시설은 북한 김정일의 특명으로 북한 핵 과학자들이 지원해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스라엘이 남북 문제에 깊이 관심을 갖고 군을 비롯해 모사드와 국정원 등 정보기관끼리 긴밀히 협력하는 것도 북한의 대중동 핵·미사일 무기 이전 때문입니다. 아사드 정권은 지난해 12월 내전 끝에 수니파 원리주의 성향 반군에 의해 축출됐습니다.
이런 맥락을 보인 이스라엘은 2025년 6월 13일 이란의 나탄즈 핵 시설도 공습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아이언돔 등 이스라엘의 다층 방공망이 13일 밤 이스라엘 텔아비브 상공으로 쏟아지는 이란 미사일을 요격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뉴스레터 외설은 다음 편에선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뒤에 숨어 있는 ‘AI(인공지능) 비밀 병기’의 정체를 ‘독점’ 공개합니다. 더불어 임동원 전 장관이 한국 외교안보계에서 ‘한미 동맹파’와 대비되는 이른바 ‘남북 자주파’가 되는 과정도 스토리텔링합니다. ‘좋아요’와 ‘구독’은 필수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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